[9월 23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허투루 듣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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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 12:7~8)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 바로 다음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예수님의 생애 막바지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예수님이 맞은 마지막 유월절 엿새전입니다. 나사로의 부활의 소문은 빠르게 사람들에게로 전파되었고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님 뿐 아니라 나사로까지도 살해할 음모를 꾸미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 모든 상황을 내다보시고 세 번씩이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하지만 멋모르는 제자들의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을 계기로 이제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거라는 전제 하에 논공행상을 두고 다툼을 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진다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한심한 모습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지. 그분이 가는 고난의 길을 이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인간 예수님을 더욱 고독하게 합니다. 그때 마리아가 등장한 것입니다. “지극히 비싼” 향유 옥합 한 근을 안고서요.
가룟 유다는 그 향유의 가치를 300데나리온이라고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므로 적어도 2천만 원 이상 나가는 큰돈을 들여야 구할 수 있다는 셈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그 엄청난 가치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습니다. 대부분의 향유가 방바닥으로 흘러내린 건 두 말할 나위가 없지요. 바닥에 흘러내린 향유는 향유의 특성상 재활용이 안 되고요. 도무지 무슨 정신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정말 예수님의 발을 향유로 씻어드리고 싶었다면 흘러내리지 않도록 적당한 양을 부어서 낭비요소를 없애야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요? 그 돈을 아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나요? 유다가 화를 낸 건 당연한 반응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에도 마리아를 두둔합니다. 아니,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합니다. 그분의 장사를 미리 준비한 거라고요.
예수님이 마리아를 칭찬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은 반면 마리아만이 허투루 듣지 않았습니다. 참 사랑은 상대의 사소한 말도 허투루 듣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말은 그의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은 들음에서 시작합니다.

주님, 오늘도 나의 귀에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