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희년 –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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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레 25:54)

안식년과 희년은 하나님의 복음을 통하여 구현될 결과를 가장 포괄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제도입니다. 그것은 땅을 쉬게 하는 환경적 책임과 그 바탕이 되는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타락 후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며 사회적 책임을 거부했지요. 죄는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보지만 복음은 모든 사람을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할 형제자매로 보게 합니다. 천국은 그런 정신적 바탕 위에서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아직 천국이 아니지만 천국을 연습하기에 적합한 훈련 장소입니다. 안식년에 히브리 종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희년에는 잃었던 기업까지 되찾아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최소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게 되지요.
안식년과 희년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신 역사적 사실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종이 되고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본인의 과실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의 기만(사기)이나 권력의 억압 및 전쟁 등 억울하고 부당하게 종으로 팔리기도 하고 삶의 터전을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하나님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애굽 인들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치르고(속량) 이스라엘을 빼내 오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희년의 첫 수혜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년과 안식년 제도는 하나님 편의 일방적이고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는 까맣게 잊고 자기에게 적은 돈을 빚진 사람에게 엄한 목소리로 “빚을 갚으라!”고 몰아세웁니다(마 18:28).
“내가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거저 돌려주라니 말도 안 돼!” 이렇듯 안식년과 희년 제도가 100퍼센트 실천된 시대는 없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치세에 유다인 종들을 놓아주도록 자유를 선포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인들은 마지못해 종들을 내보냈다가 기회를 보고는 얼마 후에 다시 붙잡아 종으로 부립니다(렘 34:9~16).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안락함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지요. 정의는 언제나 약자들이 외치는 구호일 뿐 정의의 실질적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유다의 멸망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렘 34:17).

주님, 내가 받은 큰 은혜를 잊지 않게 하셔서 동료들에게 너그럽게 하옵소서.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