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영문 밖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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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가져다가 첫 번 수송아지를 사름 같이 불사를지니 이는 회중의 속죄제니라”(레 4:21)

모든 사람은 죄를 “깨달았을 때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차라리 깨닫지 않은 것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속죄제를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번제는 내가 드리지 않아도 제사장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늘 드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재정도 아낄 수 있고요. 그래서 일부러 깨닫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번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매일 드려졌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번제의 혜택 즉 용서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각 사람의 마음에 옮겨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을 깨닫는 데서 더 나아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닫는다는 건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이 내면화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의 죄라고 말하면 나의 죄는 아닌 것으로 착각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속죄제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고기를 영문 밖으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살랐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물은 모두 성소 안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 나가 죽으실 것을 상징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것입니다(히 13:10~13).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요, 말 뜻 그대로 “평화(살롬)의 터전”입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눅 2:14) 하나님의 아들이 평화의 성을 떠나 고난과 굴욕의 짐을 지신 것입니다. 즉 속죄제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길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는 제사입니다.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면” 나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께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하게 했는지 알기 전까지는 나의 죄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평화가 깃들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겪은 고난과 굴욕을 깨닫게 됩니다. 거기서 폭포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고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려온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히 13:13) 주님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아가리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화평케 하는” 일을 위해서 말이지요(마 5:9).

주님, 순결하고 예민한 양심을 주셔서 저의 죄를 볼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밝혀 주옵소서.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