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화요일 장년교과]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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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요 19:30).

빚은 하늘의 원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고 그들의 범법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공의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부도를 맞고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인해 영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가동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일종의 보증이 되셨다(히 7:22). 구속자라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통해 유사 이래로 가장 중요한 거래가 성사되었다. 오직 그분의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었다. 공의와 긍휼이 십자가에서 만났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있던 죄의 빚을 갚으셨다. 우주는 인류의 속량의 대가로 지불된 그 같은 부의 과시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엡 5:2).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물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써,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하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각 사람의 의지와 애정과 지능과 심령을 다 사셨다”(실물교훈, 326).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는지 열거해 보라. 골 1:13, 살전 1:10, 벧전 1:18, 히 2:14~15, 갈 3:13, 계 1:5.
요 19:30에 등장하는 그리스어 ‘테텔레스타이’는 ‘가장 위대한 선포’라고 불린다. 그 뜻은 “다 이루었다”이다. 그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다. 그분의 마지막 선언은 자신의 사명이 완수되었고 인간의 채무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아무 소망이 없는 자가 아닌 잃어버린 세계의 속량에 성공한 자로서 그렇게 반포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속량을 바라보면 과거의 한 사건을 통해 현재에 미친 영향과 미래에 약속된 소망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 그리고 마귀가 벌여 놓은 일들을 단숨에 영원토록 없애기 위해서 그분의 생명을 바치셨다.

교훈 : 영원한 멸망을 받을 운명에 처한 인류는 하나님의 공의에 빚을 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의 모든 보화를 내주고 우리의 빚을 갚으셨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가 지고 있는 죄의 빚이 완전하게 속량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대가 어떤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어서) 이는 우리가 자격이 없는데도 속량함을 받았다는 뜻이다(엡 1:7). 구원의 경이로움을 맛본다는 것은 거룩한 땅을 밟는 것이다.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가장 숭고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분의 최고의 관심사는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를 향한 그분의 관점과 특별히 그분이 우리와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준다. 공의가 충족되었으므로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적용 : 그대를 위해 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그대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구속의 사랑을 이해할 때 – “우리가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속주가 되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돌아가실 때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랑을 보여 주셨다. 우리가 이 사랑을 이해할 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을 받고 죄를 슬퍼하게 된다”(생애의 빛, 27).

기도
다 이루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억눌렸던 모든 죄의 짐에서 해방되었음을 믿습니다. 제 삶에 드리워졌던 모든 불행의 그림자가 걷혔음을 믿습니다. 이제 제 삶이 주님께 산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