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한반도의 위기와 재림교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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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만 목사는 남북한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북한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을 강조했다.

김선만 목사는 남북한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북한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을 강조했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종교적 박해.  

이런 단어들을 이야기하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한 집단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국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과 관계없이 막연한 적대감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와 점점 더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멀어져 가는 사람들 그리고 교류와 정서의 골이 깊어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포심으로 다가오고 있는 그들에 대해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신앙과 재림을 기다리는 사명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000년 7월 어느 날 동해에서 관광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망망대해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죽음의 골짜기로 가는 듯한 두려움과 막막함에 한없이 기도하던 그 두려움이 지금의 남북한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다가옵니다.

그 때는 부족한 사람에게 금강산농장의 농업기술지도라고 하는 특별한 임무의 무거운 짐과 그 무서운 곳을 왜 가려고 하느냐며 만류하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음성이 과연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공포에 가까운 무서움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2008년 7월 어느 날 관광객 한 명의 죽음으로 금강산관광 사업이 중단되기까지 8년 동안 지속되었던 북한 고성군에 있는 고성 남새온실농장에서의 경험은 남북관계와 분단의 아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사실적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2002년 2월까지 금강산농장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신학과에 복학한 후 2004년 졸업을 하고 목회자가 된 이후에도 북한과 현대아산의 요청으로 목회를 하면서도 계속 금강산농장을 지원하며 듣게 되었던 가장 많은 질문은 “북한에서 과연 전도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언제나 동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교회나 성경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나 정보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을 매우 비웃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전도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답변입니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 평생을 안식일을 지키며 신앙을 유지해온 한 할머니의 증언은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은 항상 죽음이 눈앞에 있는 것과 같은 공포였다고 합니다. 자기 주변의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때로는 10여명이 많을 때는 50명의 사람들이 남몰래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경험은 그분의 평생의 동반자인 성경책만큼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이분의 성경책은 지난 3월 9일 삼육대박물관에 기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재림신앙을 가지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이 할머니처럼 간절하게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도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돌보심으로 신앙을 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간절한 소원인 자유로운 신앙은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국인 중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한국을 오게 되면 가장 놀라는 것은 분쟁국가 중에서도 매우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이 전혀 없는 것처럼 아무런 인식도 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 바로 앞에서 총과 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주변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매우 특수한 지역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나 일본과 러시아 같은 주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남한과 북한 스스로 분명한 태도나 결정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일반적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붕괴론’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북한정권은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며, 둘째로는 ‘개방론’으로 급격한 시장경제의 확산과 경제성장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로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입니다. 이 두 가지 전망을 놓고 주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매우 심각하게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익추구입니다. 오랜 가난과 통제로 불안한 생활을 하는 인민이나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북한은 정권유지를 위해서 한국은 전쟁위협해소를 위해서 어떠한 일이라도 하려고 할 것이며, 그것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응은 계속 대립과 협상에서 자신들의 입장과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재림신앙인은 전혀 다른 견해와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는 에베소서 6:12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전체적인 구원의 역사를 통해 눈앞에 보이는 세계 그 너머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움을 주관하시는 하늘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제자들 중에 두 극단적인 입장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입니다. 마태는 로마에 협조하여 일을 하다가 부름을 받았으며 시몬은 로마 제국의 권위에 강하게 반발한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정치적 가치관을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 안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 즉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품성과 태도 속에서 하늘의 선물과 구원을 경험하여 감정과 사상과 행동이 서로 일치 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땅에 더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풍요롭고 평화롭고 자랑스러워야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과 명령하신 사명은 그런 부와 명예를 이 땅에서 누리는 그런 삶이 아닐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사도행전 14:22절의 말씀은 이 땅의 삶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가야 함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북한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속히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복음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생활과 품성으로 증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마음이 어둡고 무거워 집니다.

우리가 조금 더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감당할 사람으로 준비된다면 그들이 해방과 자유의 날이라 부를 수 있는 그날을 속히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의 그날을 위하여 기도하며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