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난해 문제 해석 #92]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계 14:11)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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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계 14:11)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11).

많은 성경학자들은 악인들이 계속하여 고난을 받고 그들의 영혼이 불멸하기 때문에 징벌은 끝없이 계속된다고 이 구절을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마도 7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죄를 지은 사람들을 영원토록 징벌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상은 공정하고 의로운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세토록”이라는 표현: 요한계시록에서 “세세토록”이라는 표현은 열세 번 나온다. 아홉 번은 하나님과 어린 양을 가리켜, 능력과 영광과 권세를 영원토록 사시는 분께 돌리는 데서 나온다. 나머지 네 번은 다음과 같이 두 경우로 나뉜다. (1) 세 번 이 표현은 악인에 대한 최종적 징벌을 가리킨다(14:11; 19:3; 20:10). (2) 한 번은 구속받은 자들의 상급을 가리킨다(22:5). 요한계시록 14:11은 하늘에서 제외된 자들에게 할당된 형벌을 묘사하는 표현을 가장 잘 대표한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라는 구절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는 마지막 경고의 문맥에 나온다. 요한계시록 14장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섬기는 자들(계 14:12)과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적인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여기서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이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를 논하고 있다. 요한은 불멸하는 죄인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죄의 삯은 사망이 아니라 지옥에서의 영원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디모데후서 1:10에 의하면, “저[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 악인들은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불멸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4:11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세토록”이라는 말의 의미: “세세토록”으로 번역된 헬라어 표현은 무엇을 의도하는가?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이온으로, “세상”(마 12:32; 13:22, 39; 24:3), “영원히”(눅 1:33, 55; 참조 요 6:51) 등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영원히”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올람에 해당된다(참조 출 19:9; 삼상 7:29 등). 그러나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 모두 항상 “끝없이 지속되는”이라는 의미를 전달하진 않는다. 이들의 의미는 이 단어들이 적용되는 주어의 성격에 좌우된다. 불멸하시는 하나님이나 불멸을 부여받을 의인이 주어라면 올람이나 아이온은 끝없이 영원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창 21:33; 마 25:46). 불멸을 소유하지 않은 사물이나 사람이 주어라면 이 단어들은 길든 짧든 주어의 성격에 맞는 제한된 시간을 가리킨다.

올람과 아이온(아이오니오스)의 용례: 이 단어들의 성경적 용례를 간단하게 개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1) 신명기 15:17에서 주인과 함께 계속하여 살기를 원하는 종은 주인을 “영영히[올람]” 섬겨야 할 것이었다. <새국제역>의 번역자들은 아무도 영원히 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올람을 “평생”으로 번역했는데, 그것은 옳다.
(2) 사무엘상 1:22에 의하면, 사무엘은 성소에서 “영영히[올람]” 봉사해야 했다. 28절에서 올람의 의미가 “평생”이라고 부연된다.
(3) 요나 2:6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오래도록[올람]”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올람은 고작 3일 주야밖에 안 된다(1:17).
(4)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종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는 것에 대해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아이오니오스]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몬 15, 16절). 여기서 “영원히”라는 시간은 오네시모가 죽을 때까지 몇 년이나 많아야 수십 년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5) 유다서 7절은 소돔과 고모라를 “영원한[아이오니오스] 불”로써 멸망시켰다고 말한다. 그 불의 결과는 영원하지만 실제로 그 화염은 모든 것을 다 태울 때까지만 지속되었다.
(6) 히브리서 5:6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네가 영원히[아이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영원히”는 분명하게 죄악 세상이 존속하고 있는 때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은 대부분 죄 문제를 다루는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소에서 죄가 도말되면 끝날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참조 히 2:17; 5:1).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11은 악인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본문은 악인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밝히 말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악인들이 최종적으로 멸망될 때 죄의 역사는 끝나지만 그 끝은 영속될 것이다.

이 “영원한 형벌”(살후 1:9)은 이런 형을 선고받은 자들이 소멸될 것을 가리킨다. 이 마지막 보응에 앞서,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모든 죄의 정도에 맞게 각각 형벌로서 고통을 줄 것이지만 그 고통 자체가 최종적 보응은 아니다. 그런 다음 멸절시키는 행위가 있을 것인데, 그 결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리고 다시 번복할 수 없는 멸망이 초래될 것이다. 이 멸망의 행위에도 형벌의 고통이 포함되지만 그것에는 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파멸의 결과는 결코 번복될 수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E. W. Fudge, The Fire That Consumes [Houston, TX: Providential Press: 1982], 47).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개념에 있는 문제점: 정죄를 받은 자들이 영원토록 계속하여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침으로써 이런 개념을 지지하는 자들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명백한 곡해를 해명해야 한다.
(1) 성경은 아무도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시 22:29). 오직 하나님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토록 형벌을 주시려면 그들의 고통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그 목적을 위해서 악인에게 불멸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묘사된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치명적인 비난거리다.
(2) 마태복음 10:28은 하나님이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라고 말한다. 그분이 악인에게 죽음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를 고통에서 놓아 줄 수 있다면 왜 그렇게 하시지 않겠는가? 죄인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악의에 찬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분의 창조 세계에는 어디에도 죄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세에는 사망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하지만 죄인이 고통을 받으면서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영원히 산다면 하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분이 하고자 하신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죄, 고통, 애통함 등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대쟁투에서 승리하시지 못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께선 승리하시고,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패할 것이다.

– S. Quezada Case